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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쿠네코] 🎁 스깔님

by 눈먼지 2025. 12. 25.

 

런던의 겨울은 언제나 젖은 솜이불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템스 강변을 따라 흐르던 안개가 웨스트엔드의 뒷골목까지 밀려와 창문을 흐릿하게 덮었다. 실 한구석, 대형 TV 화면 속에서는 나라티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가 주연을 맡은 시즌제 드라마의 크리스마스 스페셜 방영분이었다. 화면 속의 그녀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처연했다.

실제 나라티는 저렇게 눈물 방울을 고고하게 떨어뜨리지 않는데. 지난 주말에 슬픈 영화를 보며 휴지 한 통을 코 푸는데 쓰던 그녀를 떠올리곤, 루카스는 피식 웃었다.

드라마 속 나라티가 오해를 풀며 남주인공과 격정적으로 포옹하던 순간, 현관문 도어락이 해제되는 전자음이 들렸다.

"다녀왔어."

현실의 나라티가 들어왔다. 그녀는 현관에 아무렇게나 롱패딩을 벗어두고 거실로 미적미적 걸어 들어왔다. 며칠 밤을 새운 야외 촬영 탓인지, 화장기 없는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 보였다. 그녀는 TV 속의 자신을 한 번, 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던 루카스를 한 번 바라보았다.

"진짜 이러기야?"

"본방 사수해 주는 게 소꿉친구의 의리라면서."

"10년도 더 전에 말한거잖아."

"나는 기억력이 좋아서."

그는 제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행거에 멋들어지게 걸려있는 의사 가운을 가리켰다. 네네, 그러시겠죠. 나라티는 리모컨을 들어 화면을 껐다. 거실을 채우던 극적인 배경음악이 사라지자, 빗소리와 라디에이터 돌아가는 소리만이 낮게 깔렸다. 루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라티에게 다가갔다. 그는 습관적으로 그녀의 목덜미와 손목을 체크했다.

"미열이 있네. 편도도 부은 것 같고. 이번 시즌 촬영장이 유독 추웠나 봐?"

"말도 마. 감독님이 눈 오는 장면 찍는다고 강풍기까지 돌렸어. 뼛속까지 얼어붙는 줄 알았다니까."

곧 크리스마스라서 해방된거지. 나라티는 종교는 믿지 않지만 이 시기엔 누구씨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퍽 감사했다. 나라티가 앓는 소리를 하며 루카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루카스는 익숙하게 그녀를 부축해 소파에 앉히고는, 라디에이터 위에 데워둔 담요를 가져와 그녀의 무릎을 덮어주었다.

"루크, 나 좀 안아줘. 충전이 필요해."

나라티가 팔을 벌렸다. 루카스는 주저 없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 소독약 냄새와 섞인 그의 체향은 안정적이었다. 드라마 촬영장에서는 수십 번의 '컷' 소리에 맞춰 감정을 끊었다 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 남자의 품 안에서는 어떤 편집점도 필요 없었다.

"오늘 키스 씬 나오더라."

"질투해?"

"또 숨 참느라 미간을 찡그리던데?"

물론 그것도 귀엽지만. 루카스의 짓궂은 농담에 나라티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정말 낭만 없다니까."

"물론 질투도 났어."

"그럴 줄 알았어."

"자, 그럼 이제 굿걸은 뭘 해야할까?"

루카스는 나라티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며 그녀의 입술을 빤히 바라보았다.

"집에 와서 또 키스씬을 찍어야한다니."

"얼굴을 찡그리는 버릇은 고쳐야하잖아? 극복할때 까지 계속 연습하자♪"

나라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깊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카메라의 붉은 점멸등이 꺼진, 필름 바깥의 시간에서 창밖의 빗소리가 박수소리처럼 들려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그녀를 사랑하는 팬이 그녀의 곁에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래티."

"너도, 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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